하이데거의 '열어 밝힘('비은폐')'과, '문화'를 보는 눈

하이데거 Heidegger
제프 콜린스 지음, 김민훈 옮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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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는 존재의 신비는 항상 밝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존재의 신비는 빛과 어둠의 엇갈림 속에 숨겨져 있다. 때로는 번뜩이고 때로는 숨어들어가는 신비를 열어 밝히는 것, '비은폐'의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신비를 '열어 밝힌' 것이다. 그리스 문화와 근대 유럽 문화 중 어느 하나는 우월하고 다른 것은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스 사람들은 철도와 근대 의학을 모른 대신(그런 방식의 '열어 밝힘'을 모른 대신), 유럽 인은 결코 경험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아름다움과 쾌락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단순한 사회와 문화의 '진화론'을 거부한다. 비록 그의 '취향'은 고대 그리스에 기울어져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사상은 원본과 전통, '근원'을 중시한다. 그는 현대 복제 문화를 경멸한다. 독창성 없는 현대 문화에선(영화, 텔레비젼, 대중 소설과 음악) 어떤 '존재의 신비'도 찾을 수 없다. 개성 없는 '그들' 속에 파묻히면서 인간 존재는 게으른 안주 속에 점점 사라져간다. 그러나 복제 역시 존재의 신비를 밝히는 '또다른 방식'이라고 할 순 없는 걸까? 또다른 질문, 과연 '독창성'과 '복제'는 대립하는 개념일까? 하나의 '천재'가 갑자기 나타나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예술을 만든다는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서구 사회를 지배해왔다. 하이데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모방과 창조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둘은 음양처럼 엉켜 있으며 서로 영향을 준다. 모방 없는 창조는 낭만주의자의 머리 속에만 있던 환상이다. 또 '완전히 똑같은' 모방은 있을 수 없다. 앤디 워홀이 그린 수많은 마릴린 몬로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수많은 '모방' 행위-평론, 패러디, '리메이크', 심지어 복사와 표절, 어떤 것도 다른 것과 '완전히 똑같을' 순 없다. 모방은 그 자체가 또다른 창조다. 문화는 창조이면서 모방이며, 개인 행위면서 집단 행위다. 그리고 모든 문화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의 신비를 '열어 밝히고' 있다. 나의 문화는 진실하고 아름다우며, 너의 문화는 거짓되고 추하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가?
 

by 쒜비 | 2008/06/04 00:03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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