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19일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닌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셰익스피어
Gonzo가 제작하고 오이자키 후미토시로가 감독한 애니메이션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다는 점에서, 바즈 루어만 감독의 '과격'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과 대조하게 된다. 일단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력한 때문인지 애니메이션 쪽은 훨씬 '얌전'하며 원작을 따라가는 듯이 보인다. 하늘을 나는 용마, 공중 도시 등 환상물과 같은 설정도 있지만, 도시 풍경과 사람들 모습은 실제 서양 도시를 표현하고자 한다(단 일본 문화의 체에 한 번 걸러진, 서양 어디에나 있을 듯 하면서도 어디에도 같은 게 없는, '유사 유럽'의 모습으로 말이다). 얼핏 보면 <빨강 머리 앤>등 '명작극장'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이야기를 펼쳐나갈수록 셰익스피어의 손을 벗어나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을 바꿨을 때부터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몬타규 대공은 극악해진 대신 원작에는 없던 카리스마와 개성을 갖게 되었다(반면 캐퓰럿 대공은 '의인'의 실속없는 왕관을 얻고,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퇴장해야 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 쥴리엣이 가문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민중의 영웅'으로 싸우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운명 따윈 비웃어 주겠다, 사랑과 굳은 의지만 있으면 어떤 고난도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이야기를 지배한다.
이런 희망은 셰익스피어의 세계에선 찾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운명'이 지배한다. 인간은 한순간도 운명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없다. 한번의 잘못에도 가혹한 대가가 돌아온다. 리어왕이 어리석었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는 너무 참혹하다. 의로운 코딜리어는 악한 언니들에게 죽는다. 악한 자들도 결국 파멸하지만, 그건 착한 사람의 징벌 때문이 아니라 내분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나쁜 놈들을 벌하는 후련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나쁜 놈들은 결국 죽게 되지만 선한 사람들, 죄없는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미쳐버렸다.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도 마찬가지다. 희생 덕분에 평화가 찾아왔다? 희생이 있어서야 반성하는 게 인간이라면, 시간이 지난 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게 뻔하다.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희극에도 이런 비웃음과 자학을 숨겨 놓았다. 모두 다 '어이없을 정도로' 잘 살게 되는 희극의 엉성한 줄거리는 오히려 현실의 가혹함을 느끼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광대, 냉소하고 불평하는 사람, 미치광이다. 작가의 진정한 뜻을 전하는 건 듣기 좋고 공허한 대사를 쏟아내는 주역들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다.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다. 머큐쇼는 캐퓰럿과 싸우는 데 열을 올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독하게 비웃는 사람이다. 그는 행동으로, 인생은 쓸모없으며 의미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티볼트의 칼에 죽으면서 머큐쇼는 본심을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본심을) 드러낸다. '내일 나를 찾아보게, 무덤에서나 만날 수 있을 걸세'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한다. 그리고 '너네 두 집안 다 망해 버려라!'라고 독한 저주(자학일지도 모른다)를 퍼부으며 죽어간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머큐쇼는 몬타규 대공의 하수인이나 하는, 피래미 악당일 뿐이다. 반면 티볼트는 애니메이션에서 엄청난 '신분 상승'을 한다. 원작에선 두 집안의 싸움을 부추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티볼트를 '띄어준' 건 무슨 뜻일까? 애니메이션을 지탱하는 '신념'이란 주제를 강조하려면 티볼트의 확신(또는 맹목)이 필요하다. 머큐쇼의 독설과 자학이 아니다.
원작을 따라가는 듯하면서 전혀 다른 길로 가는 애니메이션과 견줘보면, 바즈 루어만의 영화는 오히려 원작에 너무나 충실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권총과 현란한 영상을 걷어내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셰익스피어의 것과 같다.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현대판 베로나 젊은이들도, 인간 역사를 언제나 지배해온 운명의 힘은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운명은 극복할 수 있다'는 애니메이션의 신념은 마지막 순간 미심쩍게 뒤틀린다. 줄리엣은 처음부터 '세계수' 에스칼리스를 위해 희생할 운명이었다. 사회와 인간을 지배하는 운명이 사라진 자리를, 우주의 질서라는 더 크고, 더 거스르기 힘든 '운명'이 대신한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엔딩'인 걸까?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 by | 2008/05/19 09:51 | 기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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