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모어, '강한 여성'의 삶


 영화에서도 애니메이션에서도 '여전사'들이 자주 보인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여전사'들이 활약한 지는 꽤 되었다. 이 세계에도 드디어 성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러나 쉽게 말할 일은 아니다. 성공한 여성들이 늘어난 만큼이나, 아직도 결혼해서 집 안에 눌러 사는 것 말고는 미래가 없는 여성도 많다. 성공한 여성들도 사실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애니메이션 '여전사'들의 괴로운 삶은 '성공한 여성'의 문제와 고민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클레이모어>의 주인공 '클레어'는 여성이면서 <베르세르크> 가츠의 것에 버금가는 큰 칼을 들고 싸운다.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여전사'는 많지만, 그들이 주인공이 된 예는 적다. 보기 좋기 위해선 미소녀나 미녀로 해야겠는데, 가느다른 팔에 큰 칼이나 도끼를 쥐어줄 순 없다. 귀여운 소녀가 바이킹 도끼를 힘 안들이고 휘두르는 건 동인지에나 어울릴 상상력이다. 그래서 여전사 대부분은 채찍, 단검 따위 '우아한' 무기를 택한다. 보기는 좋다. 그러나 맞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투지'를 보여줘야 할 주인공이 되기는 어려워졌다. 과거의 여전사들은 결국 남자 주인공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에 그쳐야 했다.

 
 최근에 와선 달라지고 있다. 여성들도 큰 칼을 쓰고 도끼를 휘두르며, 남성보다 더한 괴력을 보인다. 주인공도 라이벌도 '최종 보스'도 모두 여성인 건 <클레이모어>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의 힘은 남성과 뿌리가 다르다. 클레어는 인간이 아니다. 몸 속에 요마의 힘이 있기에 큰 칼을 휘두르고, 상처를 입어도 회복할 수 있다. 인간일 때 클레어는 연약한 소녀일 뿐이다. 가츠는 그런 딜레마가 없다. 취향이 많이 변했다지만 아직도 강한 근육은 남성의 '아름다움'으로 여겨진다. 남자 전사는 힘과 아름다움 어느 한 쪽도 버릴 필요가 없다. '클레이모어'들은 거친 싸움을 하면서도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싸워야 한다. 힘과 아름다움은 날카롭게 충돌하며 자주 현실성을 갉아먹는다.
 
 더구나 요마의 힘은 제어하지 못하면 금새 폭주한다. 평소의 예쁜 모습은 떠올릴 수 없는 괴물이 된다. 이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헬스 클럽에서 처절하게 단련하면 남성에게도 지지 않을 근육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 대신 당신은 성 매력이라는, 또는 '여성스러움'이라고 불리는 (아직까진) 여성의 최대 '무기'를 잃게 된다. 사실 성 매력도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무기다. 폭주하여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클레이모어'의 모습에서 성형수술 부작용, 화장품 중독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요즘 여성들은 이렇게 낮은 수준의 무기로 싸우진 않는다. 그들은 정치인이 되고 교수가 된다. 또는 사업을 하여 부를 일군다. 남성이 사회를 지배한 진정한 '힘'을 손에 넣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함정이다. '남성=힘'이 세상의 질서라는 깨달은 건 맞았다. 그러나 그들은 '힘이 무엇인가?'를 묻는 과정에서, 남성들의 대답을 그대로 따라버렸다. 남성에게 '힘'은 폭력이다. 근력만이 아니라, 돈이든 권력이든, 자신만이 높아지고 남은 짓밟는 것이 '힘'이다. 세계를 삭막하게 만든 것이 남성의 이런 사고방식이다. 여성 역시 '힘'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짓밟아야 한다. 콘돌리자 라이스를 보라. 그가 아프리카계 여성이라고 해서, 소수 민족이나 약소국, 또는 그 나라 빈민 여성을 위해 말 한마디라도 해준 적 있는가? 가끔씩 UN의 겉치레 행사에서, 쓸모라곤 미국 쇠고기 대표님의 립 서비스만도 없는 겉치레 말만 몇 마디 지껄일 뿐이다. 어떤 남성보다도 더 잔혹하고 탐욕스런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특별히 비뚤어진 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성공한 여성'이 되려면 악랄해져야 한다. 그 사람의 인격 문제가 아니다. 남성 중심 사회의 뿌리를 파헤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똑같이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그 게임의 규칙 안에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상대가 바라는 규칙대로 싸우는 것, 이미 진 것이다. 
 
 결국 '성공한 여성'이 될수록 남은 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벌일 살벌한 싸움 뿐이다. 클레이모어에게 인생은 두 가지 뿐이다.할 수 있을 때까지 요마를 베어넘길 것인가, 아니면 폭주하여 스스로 요마가 된 뒤, 동료들의 칼에 편안히 죽을 것인가? 성공한 여성도 마찬가지다. 사회와 가정 사이에서 영원히 긴장하고 고뇌하며 살 것인가, 다 집어치우고 가정으로 '돌아가' '안식'을 얻을 것인가?

 
 <클레이모어>의 전사들은 누구보다 강하다.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남성'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일뿐이다. 그들의 두목은 '아버지'의 도덕에 충실하다(그러나 '아버지'는 여러 사람이다. 그들은 '딸'을 공유한다!) '딸'들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면 예뻐하지만, 잠시라도 반항하거나 명령에 의문이라도 품으면, 다른 '딸'들을 시켜 사정없이 숙청한다. 특히 '각성'하는 것은 반드시 숙청해야 할 죄다. 각성은 고통과 함께 엄청난 쾌락을 가져온다. 남성들이 '클레이모어'에 부적합한 건 이 쾌락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훨씬 더 참을 수 있다. '아버지'는 과거 클레이모어였다가 '각성'해 버린 남성은 내버려두지만, '딸'이 각성하면 가만 두지 않는다. 우리 사회 '아버지'들도 아들의 '젊은 날 불장난'은 받아들이지만, 고이 기른 '딸'이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자결'을 명한다(딸을 강간범에게 시집 보내는 것과 같다. 사실상 가정이란 동굴 속에 딸을 가두고 영원히 '죽게 하는' 것이다). 한 사람 씩 싸울 수 있는 '독립'한 존재 같지만, 사실 클레이모어는 '아버지'의 손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날 여성들도 육체의 '아버지'는 벗어났다(아직 그러지 못한 사람도 많지만). 그러나 사회 '지배 윤리'라는 더 큰 아버지, 권력자의 손아귀에선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힘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운 테레사는 클레어에겐 영웅이고 동경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는 클레어를 마을에 떼어 놓고 가려 한다.'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어라', 테레사의 충고는, 여성이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괴물'이 되는 것 뿐이라는, 그 뒤로는 평생 위태로운 균형 잡기만 남았을 뿐이라는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테레사는 클레어를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긴다. 그러나 조직의 규율은 예외가 없다. 사실은 '딸'에게만 예외가 없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남성보다 갑절은 더 비난과 저주, 엄벌을 견뎌내야 하는 게 '사회인' 여성의 운명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속박에 얽힌 소녀들은 섣불리 이런 '언니'들을 동경한다. 함부로 어른의 세계에 들어서는 대가는 크다. 프리실라는 섣불리 요력을 풀었다가 폭주하여 '각성자'가 되버린다. 최강의 힘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괴물, 같은 여성들도 다가가지 않을 외톨이가 된다. 클레어는 테레사의 바람과는 달리, 복수를 위해 그와 똑같은 길로 들어선다. 물론 클레어는 프리실라같은 바보가 아니며 정말 '강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결말에 이르기까지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가슴이 아픈 일이다.

by 쒜비 | 2008/05/16 09:30 | 기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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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a183ta at 2008/10/25 18:46
천재 아니십니까? 대단한 해석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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