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피쉬'를 보았다. '재미있었다'(1)


 
 <개그콘서트> '닥터 피쉬'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단 범위 제한이 있다. 방청객이 모두 떠난 무대에서 공연하는 '실험'을 했던 처음2회의 '닥터 피쉬'만 가지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처음 느낀 것은 당연히 '황당함'이었다. 사실 당황하기까지 했다. 전혀 웃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썰렁한 객석을 향해 '여러분의 사랑이 없었더라면...'같은 대사를 날리며 폼은 다 갖추는 유세윤의 모습은 슬프기까지 했다. 혹시 인디 음악인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려는 꼭지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이런 괴상한 느낌은 방청객과 함께 하는 3회부터 사라졌다. 유세윤의 어이없는 폼잡기에 방청객들이 박장대소하니, 나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심했다. 이 꼭지는 역시 웃자고 만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정확히, 무엇을 '알게 된' 걸까?

 
 
 묻게 되었다. '웃기기 때문에 웃는 것'인가, '웃기 때문에 웃긴 것이 되는 것'인가? '닥터 피쉬'가 계속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공연했다면 나는 계속 심각했을 것이며, 희극 꼭지 속에서 뜬금없는 사회 비판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방청객들의 웃음은 내게, 녹화 희극 프로(<유머 1번지>같은)나 시트콤에 나오는 '가짜 웃음'과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내 웃음 중 반 이상은 그들이 '옮긴' 것, 또는 '강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TV로 <개콘>과 <웃찾사>를 보는 사람 뿐 아니라, 실제 공연을 보는 방청객들도 이런 '강요하는 웃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그들의 웃음은 한쪽 구석에서 터진 것이 반대 쪽까지 전염된 것이다. 그들 중에서도 스스로 웃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군중의 열기는 한 사람의 이성만으로는 다스리기 힘들다. 마른 들판과 같다. 한 번 불씨만 던져 주면 모두 다 태워버릴 수 있다.

 
 처음 웃는 몇몇 '불씨'도 마찬가지다. 희극인과 작가들은 처음부터 이들의 반응을 조종한다. 유능한 작가와 희극인은 정한 곳에서 관객을 여지없이 웃게 하는데, 이건 사실 관객에게 '이 부분이 웃어야 할 부분'이라고 눈치채게 하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사실 이건 정말로 기술이 필요하다. 대놓고 '웃어라'라고 명령하면 안 된다. 재미없을 때의 <개콘>과 <웃찾사>가 꼭 이런 모습을 보였다.


 유능한 작가는 짐짓 시치미를 떼면서도, '책상 밑'으로는 방청객과 시청자들에게 거래를 약속하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들은 교활하다. 작가와 희극인이 그들 마음에 드는 '떡밥'을 던져주지 못하면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러나 자신들 입맛(요즘 '코드'라고 많이 부르는)에 맞는 '떡밥'을 던져준다면, 언제라도 뜨거운 박수와 웃음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닥터 피쉬'는 본뜻이었든 아니든 간에, 이 '거래'를 폭로했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    

by 쒜비 | 2008/04/23 12:01 | 기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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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메이 at 2008/04/23 21:51
오늘 마침 개콘 지난 영상을 다운받아 보았는데 매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링크 추가 신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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