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21일
다소 시간이 지난 성전환자 강간 사건 판결 이야기(또는 '판사님'의 오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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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한 사람을 남성 세 명이 겁탈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아직 판례 변경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피해자는 분명히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판사님의 말씀 옮겨 보자면, '겉모습은 여성이어도 염색체 등은 여전히 남성이므로 피해자는 남성'이며, '강간을 당하는 사람은 부녀자 뿐(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특권을 규정한 내용 같다)'이므로, 성전환자에게 '강간'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자면, 피해자가 겉모습이 여성이고, 성격도 여성과 같아져 여성으로서 살고 있다고 해도, '기본 요소'인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 남자로서 살았던 기간, 성전환 수술 후에도 여성의 생식능력이 없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인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 없다는 것(작은 따옴표는 글쓴이가 붙였음). 법률은 분명히 '부녀자'만이 강간을 당한다고 하고 있다는 것.
섹스 문제는 당사자만이 판단하고 책임진다는 '상식'이 거짓이라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판결은 없다. 우리는 이 판결 덕분에 섹스야말로 국가와 사회, 주류 질서의 엄한 관리를 받는 분야임을 깨닫는다. 당사자가 이미 정신상, 사회 위치상 '여성' 또는 이전과는 다른 성 위치에 서게 되었는데도, 대법원이 '종합적 고려'라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리면 아무 소용 없다. 나의 정체성을 내가 아닌 판사님이 결정하는 것이다(판사님 전날 밤에 라캉 책이라도 몇 줄 훑어 보신 걸까). '생식능력'을 '여성'의 조건이라는 이야기, 수많은 불임 여성, 폐임기 지난 여성들도 '여성'이 아니라는 이야기. 사회의 수많은 성원을 적으로 만들겠다는 판사님의 대담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회 일반인'이란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정치인들, 언론인들, 판사님들이 틈만 나면 들먹이는 이 X파일 음모 세력보다도 더 신비에 싸인 자들은 누굴까. 언제나 그렇듯 우리 판사님들은 우리의 호기심과 스릴을 위해 이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판사님이 아무리 근엄한 표정으로 '무죄'를 선포한다고 피해자의 고통이 없어지진 않는다. 트랜스젠더 등 '비정상인'을 대하는 한국 '사나이'들의 태도로 볼 때, 피해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잔인하게 때렸을 게 분명하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이 '사나이'들의 죄는 남아 있다. 내 뜻에 반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볼을 살짝 꼬집는 것, 어깨를 툭 치는 것도 심한 부끄러움을 줄 수 있으며 모욕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성추행과 성폭력을 판단할 때는 특히 이 문제에 예민해져야 한다. 그러나 학교와 군대와 검찰청이라는, 폭력을 '권위'로 거짓 꾸민 집단에서 오랜 세월 단련한 판사님들의 마음에 이런 감수성을 기대하긴 힘들다.
결국 법률과 판사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판사는 심지어 피해자에게 '네가 피해자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했다. 성과 상관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인간을 향한 '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판사님에겐 그런 의식도 없었다. 어쩌면 진정한 폭행범은 의식과 판단 문제까지 모두 자기가 차지하겠다는 오만한 법률, 그리고 법률을 올라타고 권력 휘두르는 재미에 취한 판사님들은 아닐지.
# by | 2008/04/21 10:05 | 기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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