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21일
'반복 코메디'가 감추고 있는 욕구

'시트콤'이 아닌 대부분 코메디 프로 꼭지(코너)는, 같은 상황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 많다. 물론 되풀이할때마다 전개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끝은 결국 같으며, 같은 한 마디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가지가지 느낌과 이야기가 피어나도 마지막엔 꿈이라도 꿨던 듯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고, 등장 인물들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말을 했었는지 모르겠다는 둥 다시 뻥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방송사에 따라, 꼭지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의 가족은 실수만 거듭한다. 가장 익숙한 형태의 반복 개그다. 아버지는 아들을 훈계한다면서 헛짚기만 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에 감동하지만 3초 후 역시 헛짚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들 역시 이젠 정신 좀 차리려니 할 때마다 변함없는 유치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다. 그러나 이 꼭지의 가족은 끊임없이 실수를 하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 같진 않다. 그들은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진다. 우리는 꼭지 끝나기 전 그걸 확인할 수 있다(항상 그러는 건 아니다). 그들은 아직 현실에 살고 있으며,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복 코메디' 꼭지는 희망보다는 냉소나 자기 학대를 담는다. 지금은 끝난 <개그콘서트> '장난하냐'는 부조리한 현실(말만 가득한 '형제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분대로 괴롭히는 사회)이 끝없이 계속될 거라는 냉소가, 유세윤의 '깐죽거림'과 잘 어울리는 꼭지였다. 냉소는 포기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다른 세계로 도망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주인공들은 이미 한 발을 현실에서 떼 놓았다. 마치 만화 <리틀 네모>처럼. 주인공은 매번 기괴한 세계를 떠돌다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언제나 그대로인 현실은 만화 구석에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그는 이미 환상 세계로 옮겨 갔다. 현실에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을 다룬 '회상 코메디'꼭지도 이런 '반복 코메디'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그들이 끈질기게 불러내는 '학창 시절의 추억'은 환상이다. 누구나 다 최전선에 갔다왔다고 자랑하는 '군대 경험'과 같다. 일부 기억 또는 심상을 따서 부풀린 희망 내지 아쉬움 곰씹기일 뿐이다. 이런 꼭지의 주인공(대개 여자애와 춤에만 정신 팔린)역시 실제 있던 사람이 아니다. 어른들의 '향수'속을 헤매는 유령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방송이 몇 개월, 몇 년을 넘어가도 전혀 '자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환상은 자라지 않는다.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며, 성장한 사람은 현실을 똑바로 쳐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반복 코메디'역시, 성장하길, 변화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재미있는 순간(=좋았던 그 때)'만을 되풀이해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몇몇 경우는 이 되풀이가 '광기'로 나아가기도 한다. 어제 새로 시작한 <개그콘서트> '너무 좋아'가 그런 예가 아닐까. 두 남녀는 모두 '정상인'의 선을 이미 넘은 것 같다(여성은 대놓고 자기가 '미쳤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헛소리와 미친 사람 같은 감정 표현을 제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말과 감정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 같다. 반복이 강박증이 되고, 결국 광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반복'의 극에 다다른 듯, 자신들을 그 영원한 부조리 속에 가두고 열쇠를 부숴 버렸다.
혼자 보기 아까운 <리틀 네모> 몇 작품...





# by | 2008/04/21 08:57 | 기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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