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14일
사진과 영상의 '폭력'

사람의 몸은 하나일 지 몰라도, 그의 존재는 수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걸 흔히 '이미지'라고 하지만, '얼굴'과 '이미지'는 다르다. '이미지'는 맥주 거품처럼 실체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얼굴'은 하나하나 모두 나의 본 모습이다. 부모가 보는 나의 '얼굴', 친구가 보는 나의 '얼굴', 또는 나의 글을 읽는 네티즌이 떠올린 나의 '얼굴'은 때로는 어긋나고 때로는 맞물린다. 그러나 오직 한 순간만을 찍는 사진은 나의 수많은 '얼굴' 중 하나만을, 그것도 짧은 한 순간 안에 가둔 것만을 드러내고, 나머지 '얼굴'은 지워버린다. 이 때 사진 속에 나온 '얼굴'은 더 이상 나의 본 모습이 아니라 '이미지'로 변하고 만다. 사진 속에서 아이를 안아 올리며미소짓는 대통령은 약소국에 군대를 보내 수만 명을 죽이는 침략자일지도 모른다.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총을 든 '테러리스트'는자식들에겐 좋은 아버지며 대원들에겐 따뜻한 동료일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을 찍은 사진의 경우 또다른 폭력이 나타난다. 수많은 사람의 모임이 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모여 하나의 행동을 같이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이다. 더구나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도 처음부터 뜻한 경우보다는 '우연'이 힘을 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진은 그런 전후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사진 속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사는 새로운 생물이 된다. 그리고 보는 이는 자신의 편견 속에, 각자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가둬 버린다. '과격 시위대','적군', '꼴통 페미'를 찍은 사진 속에 있는 것은 각자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사진이란 '사이비 과학자'가 만든 새로운 합성생물이다.
사진의 이런 특성은 인간의 나쁜 본성을 자극한다. 복잡하고 머리아픈 '진실'을 찾기보다는 쉽고 간편한 단정, 편가르기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사진은 좋은 빌미를 제공한다. 이 현상이 더 심해지면 '이미지'가 진실을 가릴 뿐 아니라, 진실을 지워버린다. 한사람의 본 모습, 전체 속 구성원의 각기 다름은 사라지고 이미지만이 사진을 가득 채운다. 물론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들에겐 이 쪽이 유리하다(인터넷에 나도는 연예인 '쌩얼' 사진과 그걸 놓고 벌이는 '진실 게임'은 어떤가? 이 역시 '진짜 미인'이라는 이미지를 놓고 벌이는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연예인이 본래 이미지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거기에서 '진짜'를 찾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연예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지, '첫인상'은 우리 삶에서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취업이나 연예를 위해, '사진발'에 들이는 그 엄청난 수고와 낭비를 보라.
그렇다면 영상은 어떤가? 영상은 사진과는 달리 시간을 나누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을 자르지 않고 계속 지켜보는 영상은 좀 더현실을 바르게 묘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리얼리즘' 이라고 분류하는 영화들도 이런 생각에 뿌리를 둔 게 아닌가 한다.
이 문제는 요즘 말도 많은 '운하'에 비유해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운하 위의 배는 바다 위의 배와는 다르다. 배는 운하를 판 자가정한 길로만 갈 수 있다. 배가 어디로 갈지 선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영화나 기타 영상 매체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는 아예 찍고 싶지 않은 부분에서 등을 돌려 버리면 그만이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발달한 편집 기술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영상 매체는 처음부터 중립이 아니었으며, 진실을 말하기는 커녕 오히려 진실을 더 정교하게 감추거나, 아예 없애 버릴 수 있다. 이 점은 사진도 마찬가지만, 마치 현실인 것 같이 움직이는 영상은, 정지 화면인 사진보다 관객의 의심을 더 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더 위험하다.
사실 여기에는 인간 두뇌의 한 버릇도 영향을 끼친다. 사람의 기억은 동영상이지만 그것은 사건 그대로가 아니다. 이미 의식 속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눈으로 볼 때부터 우리 뇌는 조작을 시작한다. 나누어진 동영상 파일처럼 사건을 원하는 부분마다 쪼개고, 그과정에서 일부 껄끄러운 부분을 버리고, 모자이크 등으로 화면 자체를 조작해 버린다. 우리 뇌의 교활함과 영상의 교활함이 힘을 합칠 때 진실을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 이미 사진과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는 이루어졌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 모두는 깨어있으되깨어있지 않은, 자기가 원하는 '진실'안에서 평생 마취되어 사는 팔자가 될 수도 있다.
# by | 2008/04/14 11:51 | 기타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는 것일까? 아니면 보고 난 후에 진실을 조작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사진과 영상으로 굳어진 이미지를 일말의 의심없이 믿어버리는 수동적인 우리. 어쩌면 깨어 있지 않으면 평생 누군가의 의도대로 끌려다닐 수 있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META / ABOUT THIS POST This entry was posted on Tuesday, April 15th,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