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7일
진정한 공포의 탄생-<데스티네이션>과 <비열한 거리>
정말 무서운 것은 외계인이나 괴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식상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보다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라. 손에 잡힌 채 얌전하게 무를 썰던 칼이 순간 미끄러져 내 살점을 베어내는 순간, 전기 톱질을 하던 중 튀어오른 작은 나뭇조각이 눈에 박히는 순간, 별 생각없이 물 묻은 손으로 코드를 잡은 순간 내 내장까지 태워버리며 몸에 흐르는 전류.
영화를 아직 보지도 못했지만 설정만으로도 공포를 주었던 <데스티네이션>. 샤워기 줄 따위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 이 영화 설정이 무서웠던 이유는 '죽음의 숙명'이니 하는 뜬구름 같은 설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설정은 내가 느끼는 공포를 감소시킬 뿐이었다. 중요한 건 아무 '의지'도 '욕망'도 없는 사물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죽거나 병신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그러나 인간이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이 '이유 없는 죽음'이다. 왜 무덤들은 모두 핑계를 가지고 있는가, 왜 인간은 사고만 나면 평소에는 부르지도 않는 하느님을 원망하는가? 그들은 사실 신이나 자연의 이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 하느님이나 운명의 신이 대답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안심하리라. 최소한 자기가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죽음 또는 비극이 아무 이유도 없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그저 우연히 수레바퀴 지나가는 길에 있었던 벌레가 아닌지 두려워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주 입에 담는 '비극'이란 말도 그렇다. 우주의 모든 존재 중에 자신의 몫-생명이든 재산이든-이 깎이거나 없어지는 것을 뭔가 '잘못되었다'고 항변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라고 주장하려면 원래 사건의 '이유'내지 '목적'이 필요한 법이다.
<데스티네이션>이 '죽음의 숙명'이란 '적', '비극의 원흉'을 굳이 설정한 것도 같은 마음가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죽인 '누군가'가 필요하고 '이유'가 필요하다. 죽음의 신과 저승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유를 안다면 더 이상 이전처럼 무섭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인간'의 본능이 예술 활동에서도 발휘되면 긴장감은 사라져 버린다. 스티븐 킹은 단순한 무생물(트럭, 낡은 기계 등)이나 생명이라고 하기 어려운 존재가 인간을 습격하는 줄거리를 만드는 데 뛰어나다. 하지만 그는 자주 거기에 '이유'와 '의지'를 설정하려는 욕망을 떨치지 못한다. 킹의 많은 소설은 마지막에 가선 김이 빠져 버린다. <맹글러>가 그렇다. 빨래 건조기가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이 주던 극단의 공포는 식상한 '악령' 이야기가 얽히면서 사라져버린다. 마치 침묵과 표정만으로 카리스마를 내뿜던 배우가 스탠딩 쇼 사회자처럼 떠벌리기 시작한 듯이.
한국 영화에서 <데스티네이션>만큼 무서운 영화를 꼽으라면 난 <비열한 거리>를 꼽고 싶다. 마지막에 '형님'이라고 부르며 옛 '형님'의 배에 칼을 꽂아넣는 옛 부하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배신'이나 '인간 세계의 비열함' 때문이 아니다. 그 부하들은 사실 '인간'이 아니다. 조직 폭력배들은 마치 자신이 의지, 욕망 덩어리인 양 행세하지만 그들은 그저 형님의 의지와 욕망대로 움직이는 도구일 뿐이다(물론 그 '형님'도 더 높은 형님을 위해, 또는 어떤 '어르신'을 위해, 나아가 사회의 숨겨진 질서라는 '큰형님'을 위해 움직이는 도구인 점은 똑같다. 그들을 자기 의지가 있는 '사람'으로 그리는 점이 '조폭물'이 떠벌린 최악의 거짓말이다). 각목, 쇠파이프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제 '인간'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주인공은 그 도구에 죽음을 당한다(물론 '도구' 스스로가 죽인 게 아니다. 다른 '주인'손에 넘어갔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샤워하던 사람의 감전사처럼 허무한 죽음, 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우리 '죽음'의 본질은 아닐까? <비열한 거리>의 이 질문은 감히 대답하기도 힘들 정도로 무섭다.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의 주인공은 매회 허무하게 죽을지언정 다음회에 다시 살아날수라도 있지만, <드래곤볼>에선 아무때나 부활시켜 주는 마왕님이라도 있지만, 우리에게 '컨티뉴'란 없기 때문이다.
# by | 2008/03/17 10:25 |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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