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3일
해리 왕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유감
참조: <한겨례>기사
해리 왕자는 결국 '무공'을 세울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선>을 비롯한 주요 언론이 '난봉꾼이 자랑스러운 영웅이 되었다'고 찬양했고 고든 브라운 총리까지 "모든 영국인이 자랑스러워한다"고 치켜세웠지만, 해리 자신은 더 큰 '무공'을 세우지 못하고 귀국한 것이 못내 아쉬우리라. 또한 이 뉴스를 본 한국 시민들은 '새 정부' 들어서도 변함없이 높은 병역 면제율을 자랑하는 한국 고위층의 모습과 견주어 보면서 곱절로 분통이 터질 것이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철저하게 지키는 유럽 '선진국'을 보면서 "역시 선진국은 달라"라고 감탄할 것이고.
물론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한국에서 정말 필요하고 강조해야 할 가치다. 법이 정한 의무도 하지 않겠다는 상류층 때문에 원래는 가지 않았어야 할 청년들까지 '서민'이란 이유로 군대에 간다. 지금도 1년에 수백 명씩 사고로 죽는(제발 모두 '사고'였길 바랄 뿐이다만) 군대에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비극을 조장한 자들이 사회 꼭대기에 앉아 '개혁', '혁신'을 말하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점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모두 다 공평히 군대에 가면 그걸로 끝일까? 그게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일까?
다시 <한겨례> 기사를 보자. 기관총을 손에 잡고 경계를 서는 해리 왕자를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의 해리는 "캘리버50은 처음 쏴 본다"며 미소를 짓고 있다. 그 기관총이 겨냥하는 상대는 누구일까. '테러리스트'? <선>은 "해리가 적어도 세 차례 공습을 지휘하며, 탈레반 30명을 죽이는 데 일조했다"고 찬양조로 보도했다. '무공'을 찬양하는 분위기 속에 '테러리스트' 목숨 따윈 고려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테러리스트'는 모두 나쁜 놈들이니까? 그렇다면 처음엔 좀 환영해 주다가 이젠 대놓고 '테러리스트'편을 드는 아프간, 이라크 거의 모든 보통 사람들(미국 끄나불에 가까워진 '민주 정부'수반들을 제외하고...)역시 미국, 유럽 연합, 그리고 우리 해리 왕자님에겐 '테러리스트'나 마찬가지리라. 그들도 모두 죽여야 하는 건가. 이런데도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의'를 가장한 강대국들의 이기심 때문에 수난을 겪었던(결국엔 '이익' 때문에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고 만) 한국은, 해리 왕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맘 편하게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은 사실 '평화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 나라 안에서 그것은 정의가 될 수 있겠지만, 인간 목숨을 파리처럼 아는 이 시대에 이것이 국제 관계에서까지 '정의'로 여겨져선 안 된다. 이 정신은 결국 전쟁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정신이며, 인류에게 해가 되는 정신일 뿐이다. 여기에는 맹자가 말한 인간의 본성, '사람이 죽고 다친 것을 보면 아파하는 마음'은 없다. 영국인들은 놀기만 좋아했던 해리 왕자가 '조국의 용사'가 된 것이 못내 자랑스럽겠지만, 난 차라리 그가 계속 '파티 귀신'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만 든다.
# by | 2008/03/13 10:46 | 기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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