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의 난은 원소가 일으켰다?

 벼락출세한 주제에 설쳐대는 하씨 남매에 거론하기도 싫은 환관 떼거지, 머저리 황제(사실 이 놈이 제일 역겹습니다. 십상시 감싸대면서 충신들 죽이는 장면 보고 있노라면, 그 뇌까지 삭아버린 대가리에 툼스톤+잭 나이프 파워밤 1만 번만 먹여주고 싶은 생각 간절하더군요)까지 반감만 가득 불러일으키는 작자들만 있어서 별로 다루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지만, 좀 의아한 데가 있어서 '십상시의 난' 부분을 좀 고찰(?)해 보았습니다. 


 일단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교활하고 치밀하다는 십상시들이 마지막에 벌인 멍청한 짓입니다. <연의>의 거의 모든 판본에서는 '대장군 하진이 누이 하태후의 반대로 직접 십상시를 죽이지 못하게 되자, 전국 각지의 영웅들을 불러 십상시를 토벌하려고 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십상시가 선수를 쳐서 태후의 명령을 가장해 하진을 불러들여 궁정 안에서 죽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하진은 이미 몇 번이나 십상시를 제거할 생각을 했었고, 그럴 실력도 분명히 있었는데도(그는 이미 중앙 군사의 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누이 하태후가 반대하면 꼼짝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줬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지방 영웅들의 손을 빌리려고 해봤자 하태후가 반대하면, 영웅들도 명목상으론 모두 한나라의 신하인데 황제를 끼고 있는 태후의 명령을 대놓고 거역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환관들은 자신들을 감싸주던 전 황제 영제가 죽었고, 자신들에겐 군권도 없으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하태후의 자비에 매달려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태후의 오라비를 죽이고는 성문 밖에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원소에게 오히려 호통을 쳐대니, 이건 그냥 '죽을려고 환장했다'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원소에게 환관의 일족까지 모두 베어버릴 구실만 준 셈이니까요. 뭐 어떤 판본에서는 '환관들은 설마 원소가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대응할 줄을 모르고 벌인 일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도 이해가 안 되는 설명입니다. 태후의 오라버니인데다 대장군인 인물을 죽였는데, 무슨 변명를 할 구실이 있겠습니까? 

 물론 십상시들이 태후와 어린 황제와 같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인질로 삼아 하진 일파를 모조리 제거하려 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십상시들의 이후 행동은 더욱 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들은 원소에게 호통만 쳤을 뿐, 태후나 황제에게 아뢰어서 원소 등을 역적으로 선포하는 등의 사후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습니다. 원소의 군대가 밀고 들어오자 십상시들 일부는 어린 황제와 진류왕만 데리고 급히 도망치는데, 이것도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해서, 일단 황제를 데리고 도망치면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행한 일이라는 느낌만 듭니다. 하지만 결과는 동탁에게 황제를 빼앗기고 죽임만 당한 꼴이니, 교활한 십상시들의 거사(?)치고는 너무나 조잡하고 멍청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런데 십상시의 멍청한 짓만이나 읽는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사람이 또 하나 있습니다. 원소입니다.

 물론 원소가 십상시의 먼 친척들까지 싸그리 죽인 것은 '주군의 원한을 갚는다'는 뜻에서 이해는 가는 일입니다(잘했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궁정을 불바다로 만들고, 난리통에 죄없는 사람까지 죽이는 참사를 감수하면서 그런 포악한 공격을 했어야 됐는지가 문제입니다. 십상시들이 거느린 궁정 안 몇 십기 병력이야 하진 휘하 병력들을 총동원하면 상대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환관들이 황제와 태후를 협박해서 자신들을 모두 역적으로 선포할 것을 걱정해서 원소가 서둘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닥치는 대로 죽이고 궁전을 잿더미로 만들어서 얻은 게 무엇이 있습니까? 그 난리통에 도망친 황제는 아무 한 일도 없는 동탁이 접수해 버리니 원소는 말 그대로 닭 쫓던 뭐 꼴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차라리 궁정을 물샐틈없이 포위한 다음, 십상시들이 반역을 저질렀으니 이를 '토벌'하여 황제를 구출하겠다고 선포하는 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면 십상시들도 황제를 협박해서 원소가 역적이라고 선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십상시들은 아무런 사후대책도 없이 일을 저질렀던 셈이니 원소가 두려워할 것은 없었습니다. 거기다 황제의 명령이고 뭐고, 군사력이 있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힘이 있으면 그 쪽이 정의인 게 역사인데...

 그래서 저는 그렇게 멍청한 인물도 아니요, 사실은 엄청 '잘난' 인물인 원소가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인 것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 가설을 하나 세워봤습니다. 그것은,
 

십상시가 아니라 원소가 하진을 죽였다



는 것입니다. 일단 십상시는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이런 엄청난 반역 행위를 저지를 처지가 전혀 아니었으며, 얻을 이익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원소의 경우는 어떨까요? 원소는 몇 번이나 십상시를 처단하고자 하진에게 아뢰었지만 하진은 우유부단과 태후의 압력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집안으로 치면 백정이었던 하진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명문가 자제인 원소가, 출신도 하찮은데다 별 능력도 없는 이런 상관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경멸했을 가능성은 큽니다. 차라리 이런 머저리는 제거해 버리고 내가 권력을 휘어잡으면...이라는 꿈을 품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그럴 힘이 있었습니다. 하진이 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장군이었지만, 아시다시피 병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것은 참모총장이 아니라 대령 등의 중간급 장교들입니다.

 원소는 이미 궁정 안에 자기 패거리를 심어 놓거나 궁정 문지기 정도를 매수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하진만 궁 안에 들어오라고 명령을 했을 것이고, 하진이 들어오자마자 척살(물론 이 때 하태후와 십상시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일을 재빨리 처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환관 복장 등으로 위장했을) 패거리들이 위에서 머리를 집어던지면 원소는 누가 그랬는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십상시가 대장군을 죽였다"라고 소리치면서 분위기를 몰고 갑니다. 십상시들이 진상을 알고 변호를 할 틈새도 주지 않고 궁에 난입해서 그 일족까지 깨끗이 제거, 물론 이 과정에서 궁 안에 있던 한 패거리도 혼란을 틈타 죽이면 음모도 감추니 일석이조입니다. 그 다음엔 어린 황제와 태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궁에서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 황제에게 '부드러운 압력'을 넣어, 원소 자신에게, 예를 들어 대사마나 대장군 정도의, 군권과 인사권을 장악하는 관직을 내리게 하면 일은 완벽하게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해보이는 원소의 이 계획은 뜻밖의 사태에 완전히 틀어지고 맙니다. 어린 황제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물론 황제는 밖에서 때를 보다 군대를 몰고 온 동탁의 손아귀에 들어가버립니다. 사실 십상시 처단이나 태후 알현보다도 더 중요한 제1 과제가 황제의 신변을 인수하는 것인데, 원소는 이 가장 중요한 일을 어이없게도 그르치고 만 것입니다. 혼란의 틈새였다고는 하지만 너무 허술한 마무리였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여기서 잠깐, 십상시의 난 현장에는 원소뿐 아니라 조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봅시다(대부분 판본에서는 조조가 현장에 같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치 빠른 조조는 분명 원소가 꾸민 속임수를 간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잠자코 원소가 십상시를 학살하는 것을 돕습니다. 어느 판본에서는 조조는 되도록 학살에는 가담하지 않으려 했다고도 하지만, 본인은 가담하지 않아도 부하들이 날뛰는 것을 억제하지 않는 식으로 교묘하게 학살을 도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조조는 최소한 원소의 계획을 알면서 묵인했거나, 또는 이미 원소와 사전에 밀약을 맺어 권력 찬탈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소는 조조에게도 한 자리를 약속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조는 원소의 파트너(전*환 옆의 노*우) 정도로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동조하는 것 같아도, 조조는 그 기회에 원소까지 밀어내고 권력을 잡을 구상을 했을 수 있습니다. 이 계획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황제의 신병 확보인데, 이 과정에서 원소 쪽 병사들과 조조 쪽 병사들이 십상시를 처단한 후, 이번에는 서로 황제를 차지하기 위해 살육을 벌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혼란을 틈타 십상시가 황제와 진류왕을 납치해서 달아나다 동탁에게 잡히는 사태가 일어나 버리고, 결국 조조와 원소는 욕심을 부리다 동탁에게 어부지리로 다 넘겨줘 버린 꼴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후 '반동탁 연합군을 결성'하면서 조조와 원소는 다시 힘을 합치지만, 이 때는 여전히 서로 원한이 있더라도 과거 권력 찬탈 음모를 들킬까 두려워 두 사람 다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연합군 해체 후 두 사람이 다시 적수가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동탁이 정권을 잡은 뒤 어린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새 황제로 세우려 하자 원소는 극력 반발하다 고향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연의>에서는 회의장에서 서로 칼까지 뽑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하는데, 낙양은 이미 동탁편 사람들로 우글거리고 있는 상태에서 원소가 이렇게까지 베짱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소설이 아닌 역사서의 기록은 <연의>와는 다릅니다. 진수의 <삼국지>는 "동탁이 황제 폐위를 의논하고자 하자 원소가 '이 일은 중대한 일이니, 태위 벼슬을 하는 숙부님과 상의하겠다'고 즉답을 회피한 뒤 바로 기주로 도망갔다"고 쓰고 있습니다. 또 <헌제춘추>라는 책은 "두 사람이 말다툼한 것은 사실이나, 동탁이 분노하자 원소는 예를 갖춘 후 물러났다(즉 꼬리를 내렸다...)"고 쓰고 있습니다. (참조: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김재웅 지음))

 이상의 기록을 보고 제가 세워 본 가설은,


원소와 동탁은 거래를 했다




는 것입니다.

 원소는 분명히 동탁에게 직접 대항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동탁도 강한 군사를 가지고는 있으나 기주에 있는 원소의 세력들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니 역시 싸워서 좋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툼'을 연출한 후 원소는 기주로 돌아가 '조용히 있기'로 합의했던 게 아닐까요?

 왜냐하면 <연의>기록대로라면 원소는 몸을 피한 뒤 의협심을 참지 못해 곧 반 동탁 봉기를 일으켰을 것 같은데, 실제 원소는 이후 조조가 진짜 반 동탁 연합군을 결성할 때까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의>에서는 원소가 원로대신 동승에게 편지를 보내어 '안에서 호응하면 나도 동탁 토벌군을 일으키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승이 마침 조조가 자원해서 동탁 암살 지령(?)을 내렸는데, 이 때 원소에게 연락을 했다던가 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조조가 동탁을 죽이더라도 동탁 패거리들이 많이 남아 있었을 테니 원소에게도 도움을 청했다면 계획이 더 완벽했을 텐데 말입니다. 또 동승은 이후 조조가 황제를 끼고 권력을 차지하자 조조를 죽이고자 모의했는데, 이 때도 변방 영주인 마등과 족보 빼면 텃밭 하나 없는 유비도 한 패로 넣었으면서, 원소는 엄청난 세력을 가졌으면서도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동승은 원소라는 인간의 본 바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떠벌이기는 잘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몸 보신 내지 영지 지키기만 급급한 사람,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소인배로 말입니다.
 

 

 

   

by 쒜비 | 2008/02/15 13:59 | 형제의 의여 영원하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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