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2일
애니콜 'Talk, Play, Love'광고, 쓸데없는 생각
정말 세상 모든 것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성부, 성자, 성령.
천(天), 지(地), 인(人)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요셉, 마리아, 아기 예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는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만물을 '3'이라는 숫자로 압축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왜 하필이면 3일까?

1, 이 숫자는 절대 그 자체다
(물론 그 너머에는 0이라는 존재가 있으나 그는 절대자가 될 수 없는
불가사의하고 부조리한, '존재'조차 불분명한 자이므로 제외한다).
모든 것이 그에게서 시작해
점점 발전하고, 또 때가 되면 쇠퇴하여 다시 그에게로 모여 하나가 된다.
그는 자기 이외에 그 누구의 홀로 서기도 용납하지 않는다.
신, 선지자, 족장, 아버지. 범접할 수 없는 권위. 오리지널. 진품.
그의 앞에서 인간은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오직 느끼는 것은 전율과 심판의 두려움 뿐이다.
2, 그는 좀 더 복합적인 양면의 존재다. 1이 모든 것이 시작하는 지엄한 카오스라면 그는
거기서 나온 최초의 의지, 문명, 질서다.
일본신화의 절대 혼돈에서 태어난 최초의 신 이자니기와 이자나미처럼.
이제 그(또는 '그들')는 스스로 모든 것을
낳고 창조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불안하다. 불완전하다.
2는 아직도 질서와 문명으로 나가려는
완전한 각성을 하지 못한 존재다. 오히려 그는 기회만 닿으면 혼돈의 편안한 품으로 돌아가버리고 싶어한다.
영화 '데드 링거'의 쌍둥이 주인공처럼. 그들은 원래 하나였기에 '분리'라는 당혹스러운, 강요된
자유를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는 그들이 감당해야 할 질서의 과업을 견대내지 못하고, 결국 모든 조화를 망쳐 버렸다.
거대한 소리를 내며 맞물려 지나가는 배들을 파괴하는 두 개의 바위 기둥.
2의 폭주는 결국 최초의 세계를 영원히 파괴해 버렸다.
쫓겨난 그들의 희망을 되찾으려는 처절한 노력은 결국 새로운 생명을 땅에 낳게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다시 2였다. 그들은 또 그들을 낳은 2와도 또 달랐다.
그들을 낳은 2는 원래 1이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2인 존재'들이었다.
1로 돌아가려는 욕망은 여전히 있지만 이제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자는 그 중 하나뿐이다.
'음'과 '양'의 조화의 구조에서, 대립의 구도로.
자본가와 노동자. 문명인과 바르바로이. 안토니오와 샤일록.
그러나 조급한 '1'을 향한 욕망은 결국 둘 모두를 파괴시켜 버렸다.
3. 두 아들을 모두 잃은 아담과 이브는 세 번째 아이를 낳았다.
대립하는 두 요소의 조화. 완전한 결합. 반성과 교정. 3개의 다리가 받치는 솥은 안정과 튼튼함이 있다.
하늘과 지하를 중재하는 땅의 부드러움. 신과 인간을 잇는 중재자. 진리에 이르는 '합'의 변증법.
하늘은 이제 만족하여 노여움을 풀었다.
지하에서 이를 갈던 분노도 이제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비로소 우리의 집, 우리의 우주가 완성되어 만물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 by | 2007/11/12 17:16 | 기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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